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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평가원의 틀 [과거를 환기하는 표현]
교육청 모의고사와 평가원 모의고사의 근본적인 차이를 짚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두 시험은 출제진부터 출제 틀까지 전면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육청 모의고사의 경우 교사, 강사들이 출제한 문제를 공모받아 짜깁기 하는 형식이지만 평가원 모의고사는 매번 ‘평가원만의 틀’을 가지고 대학 교수들이 출제하는 시험이다. 교수들이 갖고 있는 문학 개념어적 틀은 교육청과 그 범위가 확연히 다르다. 수능을 출제하는 교수들의 생각을 따라야지, 기타 모의고사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 관련된 자료를 보자. 평가원이 낸 수능 문제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
Q. 과거의 상황을 환기하며 화자의 정서를 드러낸다.(O.X)
위 문항은 문학 개념어에 대한 오해로 논란을 낳았던 2009학년도 수능 문제다. 이 문제의 답은 O였는데, 과거형 어미 ‘던’이 들어갔기 때문에 ‘과거를 환기’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문항이 출제되기 전까지, 교육청 문항에서 과거의 상황을 환기한다는 선지에 대해 어미 ‘던’은 근거가 되지 못했지만 평가원은 이것을 과거의 상황을 환기한다고 본 것이다. 물론 필자는 ‘추억’과 ‘옛 맹서’도 근거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필자가 출제자에게 직접 물어봤을 때 ‘던’이 확실한 근거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거다. 알아두자. ‘던’은 과거를 환기하는 표현이다.
반면 교육청을 비롯한 기타 사설 문항의 경우, ‘던’이 나와도 과거를 환기하는 표현이 맞는 표현으로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평가원의 틀과 교육청 등 사설의 틀이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극명한 경우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여기서 얻어가야 할 교훈은, 문학 개념어를 학습할 때 그 중심을 반드시 평가원 문항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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